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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의 '내손동' [#73]

교양·라이프시 읽는 토요일 2016년 09월 30일 16:53 윤지은
[한겨레 토요판] 이윤학의 내손동


내손동 / 이윤학
 
은행나무 둘레에 버려진 자취 살림도구들
엠디에프옷장과 침대와 두 칸짜리 비닐소파와 냉장고와
비닐봉지에 쑤셔 박힌 이불 더미와 말라비틀어진 화분과
심하게 금이 간 어항 속 인조 물풀들이 은행잎에 덮인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골목으로 진입하자
하수구 뚜껑들이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붉은 끈을 동여맨 잡지 더미에서
『1990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과
이성복 시집『남해금산을』꺼낸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 규진이 언니
열심히 살아가세요

생일 축하하고
이성복 씨 같은 내성적인 사랑은 하지 마라

약수터 어귀 미루나무는 저녁 어스름을 꼬챙이로 꿰매 들고
소통 불가능한 말을 흘린다 풍 맞은 남자는 무당의 무음
방울지팡이를 바닥에 꽂고 돌리면서 딴청을 부린다 그는 지금
오래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자전거로 귀가하는 남자는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핸들을 비틀어 잡는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바로
언덕으로 치달으며 이륙하는 제트기 소리를 낸다

눈물이 쏙 빠지는 행복이 더 이상
당신을 찾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당신의 만성비염까지 사랑하기에 이를 것이다

축축한 등줄기 결리는 은행잎에 누워 쿠린내와
약수 맛과 외국으로 나가는 여객기 배때기에서
시작된 휘파람을 부를 것이다


● 제작진
기획: 박유리, 제작: 한겨레TV, 낭송: 이윤학, 영상편집: 윤지은, 영상 : 이경주
프로그램 공지사항
매주 토요일 한겨레신문 토요판에서 만나는 시인의 시 낭송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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