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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능가산 의상봉 부사의방 [하감땅 #19]

 

[하늘이 감춘 땅] 변산 능가산 의상봉 부사의방

 

한사람 겨우 지나다닐 만한 절벽길에 서너평 공간
한국불교 대표할만한 고승들 참나 찾아 '벼랑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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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험준한 수행처인 전북 부안 변산의 부사의방에 다녀왔습니다. 부안 변산 일대는 산세가 빼어나기로 세상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바다와 강까지 어우러져 천하 절경입니다. 그래서 인걸은 지령이라 했던가요. 원효와 의상, 부설거사, 진묵, 진표 등 한국 불교를 대표할 만한 고승들이 모두 이곳에서 수행했습니다.

 

부사의방은 변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509미터의 의상봉 동쪽 절벽에 있습니다. 능가(楞迦)산은 '험해서 오르기 어려운 산'이며, 부사의(不思議)란 '세간의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란 뜻입니다. 천길 낭떠러지를 직접 보고, 진표 율사(718~?)의 행적을 듣지 않고선 이를 헤아려 알기 어렵습니다.

 

‘세간의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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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흰구름'이란 법명을 가진 백운거사 이규보(1168~1231)는 변산에서 나무를 베는 관리로 있을 당시 부사의방을 다녀와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른바 부사의방이란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서 구경하였는데, 그 높고 험함이 원효방보다 만배였고, 높이 백자쯤 되는 나무사다리가 곧게 절벽에 걸쳐 있었다. 3면이 모두 위험한 골짜기라 몸을 돌려 계단을 하나씩 딛고 내려가야만 방에 이를 수가 있다. 한번만 헛디디면 다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나는 평소에 높이 한 길에 불과한 누대를 오를 때도 두통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아찔하여 굽어 볼 수 없었는데, 이에 이르러서는 더욱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올라가기도 전에 머리가 벌써 빙 돈다. 그러나 이 승적을 익히 들어오다가 이제 다행히 일부러 오게 되었는데, 만일 이 방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또 진표 대사의 상을 뵙지 못한다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어정어정 기어 내려가는데 발은 오히려 사다리에 있으면서도 금방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들어가서 부싯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향을 피우고 율사의 진영에 예배하였다."

 

천년도 넘은 그 옛날 누가 어떻게 저 큰 쇠말뚝을 이 절벽에…

  

부안 하서면 비득치에서 산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면 공군부대가 있고, 부사의방은 이 부대 뒷 편에 숨어 있습니다. 능가산의 본찰인 내소사 선원장인 철산 스님이 몸소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의상봉 아래에 이규보가 말한 나무사다리는 없었습니다. 대신 누군가가 밧줄을 매어 놓았더군요. 또 절벽을 내려가다가 발끝 하나 디딜 곳이 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디딜 만한 나무가 그 절벽 가운데에 서있었습니다. 천하를 다 피해 이곳에 이르러서도 결국 만물의 은혜를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봅니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니 천길 낭떠러지 옆으로 겨우 한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공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길을 타고 10여 미터를 옮기니 서너평의 평평한 공간이 나왔습니다. 부사의방이었습니다. 바닥에 기왓장은 몇 조각이 굴러다니지만 옛글에 나오는 집이 없으니, 진표 율사의 진영도 있을 리 없었습니다. 한쪽은 털구멍 하나 없는 바위벽이요, 다른 쪽은 현기증이 일 만한 까마득한 벼랑뿐이었습니다. 진표가 오기 전부터 '다람쥐절터'로 불렸다는 이곳에 어찌 다람쥐가 아닌 사람이 머물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진표는 이곳에서 3년을 머물며 수도를 했다고 하니 어찌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규보의 글엔 바다의 용이 바람이 불어도 집이 쓰러지지 않도록 절벽에 쇠말뚝을 박아 매어두었다고 했습니다. 집은 사라졌지만 절벽에 쇠말뚝 끝이 아직도 박혀 있더군요.  천년도 넘은 그 옛날 어느 누가 어떻게 저 큰 쇠말뚝을 이 절벽에 박을 수 있었을까요. 이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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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꿰어놓은 개구리가 바둥바둥 살아있어 죄책감 느껴 출가

 

진표가 이곳에 온 것은 스물일곱살 청년 때였지만 그는 이미 출가한 지 15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진표는 열두살 어린 나이에 출가했습니다. 애초 김제 만경에서 태어난 그는 출가 전 마을 친구들과 산에 놀러갔다가 개구리 30마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 속에 담가두고는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개구리를 잡아둔 것을 잊어버린 채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듬해 또 친구들과 놀던 중 우연히 그 자리에 갔는데, 작년에 자신이 꿰어놓은 개구리들이 죽지 않은 채 여전히 울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진표는 자신이 무심코 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생명들이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받은 데 대한 충격과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때부터 생명에 대해 고뇌하던 그는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던 중생에서 벗어나 다른 생명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줄 것을 서원하며 출가를 단행했습니다. 소년이 잘못을 뉘우치며 출가를 결행하던 날 모악산 위로 오색구름이 눈부시게 피어오르며 부처님 형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소년은 그 오색구름을 향해 30리를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그 숲속엔 한 암자가 있었고, 한 노승이 앉아있었습니다.

 

"스님, 죄악에 찬 저를 구제해 주십시오."

 

소년이 죄를 구원받기를 간청한 스승은 숭제법사였습니다. 그 스승 아래서 지성으로 도를 닦은 지 10년이 되었을 때 스승이 진표를 불렀습니다.

 

"나는 일찍이 당나라로 들어가서 선도삼장의 밑에서 공부한 뒤 오대산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지성으로 기도해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5계를 받았으니라. 너도 지장보살과 미륵보살 앞에서 지성으로 참회해 직접 계를 받도록 해라."

 

스승은 "아무리 죄업이 무겁다 하더라도 지성으로 1년을 기도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마음을 먹고, 정신을 모으면, 불가사의한 일도 이룰 수가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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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는 쌀 20말을 쪄서 말린 다음 부사의방으로 가 쌀가루 다섯홉을 하루 양식으로 삼고 수행했습니다. 그는 비바람 몰아치는 절벽 끝에서 자신이 연명하기도 부족한 쌀가루 다섯홉 가운데 한 홉을 매일 다람쥐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애초 기한했던 1년을 훌쩍 넘기고 3년 동안 기도를 했지만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은 나타나지않았습니다. 크게 낙담한 진표는 다음 생을 기약하기로 하고, 절벽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홀연히 나타나 그를 가볍게 받아 다시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진표는 3·7일(21일)을 기약하고 온몸을 돌로 찧으면서 하는 참회수행법인 망신참법을 했다. 그러자 3일만에 온몸에서 피가 터지고 뼈가 하얗게 드러났습니다. 7일째 그 앞에 지장보살이 나타나 어루만지자 몸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절망해 죽음을 선택할 만큼 나약하지만, 자신의 몸을 던지며 뜻하는 바를 기어코 이룰 만큼 금강처럼 단단하기도 합니다. 그 절벽 위에서 철산 스님은 한 어부의 아내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나간 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마을 사내들이 돌아왔는데, 한 여인의 남편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배에서 떨어졌는데, 너무나 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쳐서 주검조차 챙길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여인은 곧바로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여인은 곧 바다 저편으로 파도에 휩쓸려 가버렸고, 마을 사람들은 너무 폭풍우가 몰아쳐 그 여인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폭풍우가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진 뒤 그 마을 모래밭에 두 구의 시체가 꼭 껴안은 채 쓸려와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다가가보니, 여인이 남편의 주검을 꼭 껴안은 채 죽어있었습니다.

 

스님은 벼랑 위에서 그 얘기를 들려주면서 "사람이 마음을 먹고, 정신을 모으면, 불가사의한 일도 이룰 수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죄인과 부처는 둘일까, 하나일까

 

진표는 그 일심으로 더욱 더 정진하여 21일째 되던 날 천안(天眼)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 천안으로 보자 미륵보살이 도솔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습니다.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은 진표에게 다가와 "훌륭하다. 대장부여! 이렇듯 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참회하였구나."

 

지장보살은 계를 주었고, 미륵보살은 '제8간자(簡子)'와 '제9간자'라고 쓰인 두 개의 나무를 주면서 당부했습니다.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뼈로서 시각(始覺·닦아서 깨달음)과 본각(本覺·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9간자는 진리 그 자체이고, 제8간자는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씨앗을 새롭게 키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직접 계를 받은 진표는 용왕의 도움을 받아 금산사를 중창했고, 나라 잃고 실의에 빠진 백제의 유민들과 전쟁으로 심성이 피폐해진 삼국 백성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지장은 누구입니까. 온 중생을 지옥에서 나가도록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옥을 지키겠다고 서원한 보살입니다. 미륵은 미래에 온 중생을 구제할 보살입니다. 개구리에게 한없는 고통을 준 이는 누구이며, 만중생을 구제한 이는 누구일까요. 죄인과 부처는 둘일까요, 하나일까요.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하면, 참 나를 구할 수 없고, 절망의 끝이 바로 희망의 시작이라고 했던가요.  한 마리 새가 부사의방 벼랑 끝 아래에서 창공을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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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글·사진 조현 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이규호 피디

 

관련 기사: 천길 낭떠러지 '절망의 끝'에 구원의 '밧줄'

[이 영상의 자세한 내용은 <하늘이 감춘 땅>(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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