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 그 암자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요. 산천어가 뛰노는 계곡물처럼 맑던 스님이 머물던 그 수행 터에. 월출산 상견성암 가는 길은 어느 때보다 설렙니다. 풍수의 비조 도선국사와 일본에 유학을 전한 왕인 박사, 다성(茶聖) 초의 선사를 낳고,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을 품어 거듭나게 한 영산(靈山)인 때문만은 아닙니다. 생전에 몇 번 뵈었던 청화 스님(1923~2003)의 그 맑은 잔영 때문일까요. 아니면 첫사랑의 산에 안기기 때문일까요. 이젠 많은 산들과 친해졌지만, 대학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마을 뒷산에 오르거나 수학여행으로 설악산 흔들바위를 간 것 외에 마음먹고 이름난 산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월출산은 그런 초심자를 받아준 첫 산이었습니다. 마치 이 지역명이 왜 영암(靈巖·영묘한 바위)인지를 말해 주듯이 코끼리 상아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통바위들과 구름 사이를 뛰어 오르던 초심자가 피안을 향해 '지상' 을 박차 오른 지 어언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월출산은 해발 809미터지만 평지에 돌출한 산이라서 마치 수천 미터의 산처럼 맑았다가 흐렸다가 부슬비가 내리다가 우박이 쏟아지다 다시 화창하게 갤 만큼 변화무쌍합니다.
